저주토끼
전체적인 느낌
책을 편식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다. 평소에 읽는 책은 개발서적을 제외하면 사회과학 분야 쪽만 읽었다. 그렇지만 영양소도 골고루가 중요하듯 소설도 한 입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에 읽게되었다.
솔직히 소설을 읽으며 이렇다할 감동을 받은적이 없어서 의심을 하고 읽기 시작하였는데 정말 첫 글인 저주토끼를 읽는데 오싹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글로 오싹해진 경험이 처음이라 정말 어색하면서 신기했다.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듯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인데 여러 소설들이 포함되어 각 소설별로 느낀바는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여러 나의 감정과 생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알쓸신잡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천 명이 읽으면 감상이 천 개가 나와야한다’라고 말하였던 부분이 떠올랐다. 이유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게 떠오른 생각들이 평소에 눈여겨 본 사회 문제였기 때문이다. 분명 다른 사람은 다른 상황이 떠올랐을 것 같았다. 이처럼 책을 보고있지만 반사되어 나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었던 전개나 다른 사람들의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해가 안되면 이해가 안된채로 두려고한다.
저주토끼 소설집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있다.
- 저주 토끼
- 머리
- 차가운 손가락
- 몸하다
- 안녕, 내 사랑
- 덫
- 흉터
- 즐거운 나의 집
-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 재회
이 중에서 머리, 몸하다만 간단히 느낀바를 적어보려한다.
머리
어느 날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막 나오려 할 때였다.
“어머니.”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변기 속에서 머리가 하나 튀어나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
그녀는 ‘머리’를 한참동안 가만히 쳐다보았다. 물을 내렸다.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는 사라졌다. 그녀는 화장실을 나왔다.
p.37
머리 소설은 위와 같이 시작을 하고있다. 읽는데 이게 무슨 설정인가 싶었다. 이런 설정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의심이 들었었다.
“그래, 그건 알겠다. 그런데 왜 내 변기 속에 존재하는 거냐? 그리고 왜 나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거냐?”
‘머리’는 입술 없는 입을 서투르게 뻐끔거렸다.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리곤 했던 빠진 머리카락과 당신의 배설물과 뒤를 닦은 휴지 등, 당신이 변기 속에 버린 것들로 인하여 제가 생겨났기에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녀는 화를 냈다.
“나는 너 같은 것에게 내 변기를 차지할 권리를 준 적이 없다. 너는 나를 어머니라고 하지만 나는 너 같은 걸 만든 적이 없으니 널 없애버릴 사람을 부르기 전에 썩 꺼져라.”
‘머리’는 대답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이제까지처럼 변기 안에 오물을 버려 주시면 그것으로 나머지 몸을 이루겠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가서 멀리 떠나 제힘으로 살아갈 테니 저에게 신경 쓰지 마시고 이제까지처럼 변기를 사용해 주십시오.”
p.38-39
‘어머니’ 자신이 ‘머리’를 만들었지만 부정하고 없애려하고 ‘머리’는 배설물 등으로 만들어졌지만 더 나은 것을 달라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더 성장하기까지 이전과 같이만 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위 글을 읽으니 연상되는 것은 가정폭력에 노출된 자녀가 연상되었다. 사랑은 커녕 배설물과 같은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먹고 자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낳은 자녀이지만 자신이 낳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없애버릴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녀는 좀 더 클때까지만 배설물을 달라고 그러면 멀리 떠나서 제힘으로 살겠다고 하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내게 베풀어준 것이라고는 있어 봤자 네게는 백해무익할 따름인 배설물과 오물뿐이 아니었느냐? 그나마 받아먹으며 사람다운 외양을 이루기 위해 나는 네게서 갖은 수모와 박해를 받아야 했단 말이다.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
말을 마치고 젊은 그녀는 늙은 그녀에게 다가섰다. 젊고 억센 손이 늙은 어깨와 목을 붙잡았다. 젊은 그녀는 늙은 머리를 변기 속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늙은 발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늙은 몸을 가볍게 변기 속에 거꾸로 처넣고나서 젊은 그녀는 변기의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p.57
이 부분은 결말 부분인데 상황이 뒤바뀌며 끝난다. 간단히 보면 ‘머리’는 젊은 그녀가 되었고 젊은 그녀가 세상으로 나오고 늙은 그녀가 변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결국 ‘머리’의 승리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좀 더 상상을 이어보면 젊은 그녀는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세상에서 잘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심리적인 요인으로 힘든 삶을 살 확률이 매우 높다. 필자의 경우 끝을 보고 꽤나 씁쓸했는데 이는 행복한 사람은 한명도 없기 때문이였다. 이긴 사람은 없다..
몸하다
“임신 6주입니다.”
그녀는 항의했다.
“하지만 전 미혼이고, 남자친구도 없는데요.”
p.87
의사는 진료 기록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아이 아빠는 있어요?”
“예?”
“아이 아빠가 돼 줄 사람이 있느냐고요.”
“아뇨…”
의사는 진료 기록에서 고개를 들고 다시 짙은 화장에 뒤덮인 그 무서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럼 빨리 아이 아빠가 돼줄 사람부터 찾으셔야 해요.”
“아이 아빠라뇨? 왜요?”
“아이를 뱄으면 당연히 아빠가 있어야 하잖아요?”
의사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어,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임신이 된게 아니기 때문에 남성 배우자가 없으면 태아가 제대로 분열하고 발육하지 못해요
…
”
p.89
이번 글도 남자친구 없는 임신이라는 설정을 보고 어떻게 풀어갈려고하는지 의심이 들었다.
간호사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의사에게서 아기를 받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아기’는 검붉은 색에 약간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핏덩어리였다.
…
“이게…, 이게 아기에요?’
“그러게 애 아빠를 찾으라고 그랬잖아요. 남성 배우자도 없이 저 혼자 크게 내버려두니까 결국 그렇게 된 거라고요.”
p.116
‘아기’는 계속 꿈틀거리다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검붉은 덩어리는 아주 잠깐, 핏빛 보석처럼 더없이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기’는 혈액으로 와해되어 버렸다.
p.117
문득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서럽게 엉엉 소리 내 울었다. 그러나 그것이 안도의 눈물인지, 아이를 잃은 슬픔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p.118
인용한 부분은 처음과 끝 부분인데 가운데는 남편을 구하려는 노력, 그녀의 심리 상태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부분은 미혼모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무슨 남자 없는 임신이라는 설정을 했지 싶었지만 읽다보니 의사는 계속해서 남편이 없으면 아이 성장이 더디고 잘못된다고 말하는 부분이 현실에서도 남편이 없으면 여러모로 여자 혼자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며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인용하지 않았지만 여러 힘든 일들 이상한 남자에게 협박, 계속되는 의사의 재촉 등을 겪으며 그녀 혼자 감당하고 있는 모습이 외롭고 처량해보였다. 임신부터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임이 느껴진다. 이처럼 몸하다 소설은 미혼모의 아픔과 처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고 여러 고민과 일들이 벌어지지만 누구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그러나 그것이 안도의 눈물인지, 아이를 잃은 슬픔인지 혹은 다른 무엇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는 정말 심오하다. 정말 안도의 눈물일지 아이를 잃은 슬픔일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러한 부분이 정말 소설의 맛인 것 같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직접 겪은 일이 아니지만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끼게하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출산과 육아란 분명 채워질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어울러 살 수 있는 삶이길..